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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5년간 억울하게 옥살이"
2010년 12월 15일, 5년만에 무죄로 풀려나
기사입력 2011-01-02 오전 10:46:00 | 최종수정 2011-01-27 오전 10:46:30



저는 오늘
201012155년 동안 필리핀 마닐라에서 정말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오늘에서야 무죄 판결을 받은 조광현 이라합니다.

저는 경기도 가평시에서 태어나 토평초 ,구리중, 청평공고를 졸업하고 육군 11사단에서 현역 병장으로 전역하였습니다. 가난한 집안 장남으로 태어나 건강한 신체를 단 하나의 재산으로 삼아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프랑스 외인부대 공수부대인 (레종에트랑제, 파라슈티스)에 자원입대 하였습니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전 세계 가장 강한 남자들이 오는 곳이고 또한 대한민국에서 군 복무를 했던 한국군인 이란 자부심 하나로 다른 어떤 나라 어느 용병 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군 복무에 최선을 다했으며 아프리카 쥐부티 코디보아, 코디디보아 내란지역 에서도 한순간의 방심은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 지역에서도 한국 사람이란 정신력 하나와 가족들만을 생각하며 수많은 역경들을 이겨내었습니다.

또한 군복무중 프랑스 10년 영주권을 받을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으며 또한 프랑스 군인으로써 가질수 있는 혜텍(프랑스 국가 연금, 우리나라 직업 군인 같은 혜택)을 저는 포기를 하고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군복무를 했을 때나 해외(영국 특수부대 독일특수부대, 이태리특수부대, 브라질 귀아나 정글 코만도 특수 훈련, 아프리카 지부티 사막코만도 특수훈련) 어느 곳에 있을 때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그 나라의 사법을 준수하였으며 단 한번이라도 법적인 문제든지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해 본적이 없는 떳떳한 대한민국의 전역 군인으로써 또 최강의 한국 용병이란 자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8년 동안 목숨걸고 프랑스 외인부대 생활을 하며 내 목숨 바쳐 번 돈 5만유로(당시 약8천만원)때문에 젊은 청춘을 지옥 같은 필리핀 감옥에서 약5년이란 기간 동안 수감 생활을 하게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아닌 이곳 필리핀 감옥에서 머물며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지난 13년간(용병8,수감5)을 돌이켜 보며 많은 생각을 해봐도 너무나 기가차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당연히 여기 필리핀에서 제가 이 나라 사법을 준수하지 않고 법을 어긴 죄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죄값을 치루어야 되겠지만 제가 필리핀에 온 단 하나의 이유는 같은 한국인으로써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수 있을 것 같아 오게 되었습니다.

제 젊은 청춘 전부를 잃었습니다. 아직은 젊지만 교도소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받은 스트레스 및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해서인지 현재 몸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정신력이 약해진 걸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돈이 없으니 감옥에서 약5년 동안 밥 굶으며 필리핀 죄인들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시멘트 바닥 복도에서 자면서 짐승같은 생활을 하였습니다. 제가 출소를 해 나갈길 만을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바퀴벌레와 쥐, 벼룩이 가족처럼 되어버린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생활하기란 프랑스 외인부대 보다 더 훨씬 지옥 같은 곳 이었습니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전 세계 모든 강한 남자들이 다 오는 곳이라 한국군인이었다는 자존심으로 살았고 한국 사람도 이만큼 강하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더욱 더 온몸으로 부딪치며 견디기 힘들었던 상황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코디보아) 내란 지역의 그 험한 전쟁지역에서 보다 더 힘든 이곳 필리핀 교도소는 정말 지옥과 같았습니다. 여기 필리핀 감옥은 외인부대와는 비교하면 외인부대는 천국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항상 굶주림과 열악한 환경의 이곳에선 항상 필리핀 교도관과 죄수들의 눈치 보며 살며 또한 하루하루 아까운 시간을 그냥 허무하게 보내며 정말 극에 달하는 외로움,...언제 나갈 수 있다는 그런 희망도 없이 아들도 재대로 안아보지 못한체 그렇게 약5년 이란 긴 시간을 보내며 지난날을 떠올려 봤습니다.

내가 혹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 무엇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는지...

저는 2005년 프랑스 외인부대 전역 후 한국으로 잠시 들어 왔다 지인의 소개로 필리핀에 카지노 사업을 하는 진연희 라는 사람이 외인부대보다 더 많은 월급을 제시하며 보디가드로 일 할것을 제안했고 또한 제가 외인부대 복무중 제 목슴 걸고 모아둔 5만 유로(당시 약 8천만원) 를 큰 이익을 미끼로 투자 하게 만들었으며 전 카지노에 관한 문외한이라 진연희씨에게 차용증을 받고 보디가드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3개월 가량을 필리핀에서 지내며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투자한 5만 유로에 대한 투자금과 이익금 역시 한푼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2005112410:00경에 필리핀 니노이아키노 국제공항에서 저는 한국의 남 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을 하려는데 공항입구에서 사복차림의 4명의 경찰이라 하는 사람들에게 총을 머리 와 허리에 들이대고 아무런 체포경위와 말도 해주지 않고 강제연행 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무런 이유를 몰랐으며 경찰서도 아닌 외진 창고 같은 곳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어두운 창고 안에 들어가니 다른 2명이 대기 하고 있었고 처음 공항서 만난 2명은 밖에 대기하고 2명이 따라 들어와서 의자에 앉혀 놓고 발목에 수갑을 채우고 손도 뒤로 한 체 수갑을 차게 되었습니다. 이후 1미터 정도 되는 각목과 권총 손잡이 등으로 무참히 30분가량 구타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맞고서 기절한 후 깨어났을 때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WHY KILL? WHY KILL?” 그래서 저는 “I DON'T KILL, I DON'T KILL. I DONT UNDERSTAND.” 이런 말만 되풀이 되었습니다.

이후 정신이 희미한 상태에서 저녁때 쯤 경찰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경찰서 안에서 의자에 않은 후 30분가량 후 한국 대사관 영사가 와서는 한 말이 조광현씨 얘네들한테 구타 당했습니까?” 그래서 제가 너무도 화가나서 얼굴 보면 모르세요? 기절까지 당하도록 맞았습니다.” 그 후 영사가 당신은 살인죄입니다. 큰 사건이니 도와주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제가 저는 살인 한 적이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라고 강하게 항의를 하였고 이후 영사는 현지 경찰과 대화를 나누고 난후 영사는 저에게 단한마디 어떠한 말도 남기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20일 동안 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동안 영사는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으며 한 번의 면회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 진연희씨가 경찰서로 와서 제가 현지인 가정부 살인,강도,차량 절도 라는게 저의 죄명 이라는 걸 말해 주길래 그때서야 저의 죄명과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았고 저는 전혀 그런 짓을 하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다 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 하며 말했으나 어느 누구하나 믿어주지 않았으며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이후 1221일 저는 마닐라 교도소로 이송되어 갔습니다.

필리핀 교도소는 정말 너무도 처참했습니다. 또한 언어적인 문제, 문화적인 차이와 필리핀 죄인들과의 갈등 등 교도소 안에서의 생활은 말로 차마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2009SBS 방송 뉴스추적이 나간 후에 이번엔 나가겠지. 한국정부에서 도와주어서 누명을 벗을 수 있겠지 라는 작은 희망을 가졌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마음은 오히려 실망감으로 진정으로 날 돕는 사람은 없구나! 라는 절망감 속에 차라리 자살을 하면 이 누명이 풀어질까? 라는 생각에 수도 없이 자살을 꿈꾸며 몇 차례 죽으려고 시도도 하였습니다. 미국인, 일본인 중국 국민들이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면 먼저 대사관에서 영사가 면회 와서 교도소장과 영사, 본인이 같이 한자리에 앉아서 면담을 하게 됩니다.

이후 영사는 자국민에 대한 교도소 내의 보호를 요청하게 됩니다. 미결수이기 때문에 재판이 끝날 때까지 설령 문제가 있을 시에도 절대 독방에 가지 않으며, 전화를 자유로이 쓸 수 있으며 청소, 작업 화장실 청소, 당번 등 모두 열외가 되며 한 달에 한번 정기적인 영사 면회 및 최저 생계비, 식품, 생필품, 약 등을 지원 받게 되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대사관에서 통역 및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로 억울한 누명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2006~20071년간은 어처구니없게도 통역이 없어 재판 진행이 되지 않는 결과까지 초래되었습니다. 오죽하면 필리핀 현지 판사가 통역으로 인해 재판이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지 않기에 직접 한국 대사관, 한인회, 상공회의소에 연락을 하였으나 어느 기관에서도 통역지원 봉사에 대한 도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200912월 자원봉사자님들이 대사관에 방문하여 조중사에 대해서 자원봉사 통역을 하겠으니 재판장에 통역 인정 요구를 해달라는 항의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사관 담당 영사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 하였고 다음날 저를 찾아와 왜 자원봉사단이 대사관을 찾아와서 난리를 피우느냐고 오히려 저를 나무랐습니다.

너무나 기막힌 일입니다. 자국민을 보호해주어도 부족할 판에 자원봉사단이 재판에 통역을 하겠다는데도 인정을 안 해주다니요. 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까? 나라에서 어떠한 보호해주질 않다니요? 미국이나 일본 중국 같은 경우 재판 결과 죄의 형량이 떨어져 죄인이 되어도 최소한의 자국민 보호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저 같은 경우 억울한 누명을 받고 재판 대기 중인 미결수 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한국정부의 아무런 도움 받지 못한 채 덩그러니 버려졌습니다.

저 같은 상황이라면 도대체 누구한데 어디로 도움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외국이니 대사관에 밖에는 의지 할 데가 없겠지요. 하지만 대사관은 1년에 추석, 설 명절에만 단 2회 면회를 와서 라면 1박스만 내려놓은 채 귀찮다는 듯이 길면 10분 정도 면담 중 애로사항에 대해 말하면 노트에 적기는 하나 다음에 아무런 후속대책이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타 외국인들이 한 달에 한번 정기적인 영사 면담이 이루어진 것 같이 생활 용품 지원 등을 전 바라지도 않았고 오로지 요청한 것은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사관에서 조그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랬을 뿐입니다. 심지어 정말 치약 칫솔 비누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지원 좀 부탁 한다고 전화를 걸면 대사관에서는 물질적으로 도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후 한 번도 대사관에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물질적으로도 안도와 주고 사건에 휘말려 도움을 달라 해도 안도와 주고 그럼 대사관은 왜 존재 하는 것입니까?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는 대사관의 존재의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여권 비자 문제만 해결해주는 동사무소 같은 존재입니다. 그럴거면 비싼 세금 내면서 대사관, 영사 등 운영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도소 안에서는 어떠한 생필품도 한국과는 달리 지급 되지 않습니다. 각 개인이 모두 돈 주고 사야하며 정말 필요한 의약품, 비누, , 치약, 칫솔, 잠자리도 그 어떠한 것도 무료로 제공되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한마디로 말해서 거지처럼 박스라도 하나 사서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웅크리고 자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의약품 같은 경우도 돈 주고 사야 하는데 아파도 돈이 없으면 약을 복용하지 못할뿐더러 심하게 아파서 죽는 경우까지 제 눈으로 목격하니 저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또 마시는 생수 역시 돈 주고 사 먹어야 합니다. 필리핀 수돗물은 중금속에 의해 노출되어 있어 피부병, 구토, 두통을 일으키며 식사는 차마 인간이 먹을 수 없는 맨밥에 소금 뿌려 먹거나 간장에 비벼 먹어야 하는데 그런 것조차 돈이 없으면 먹지 못 할뿐더러 또한 하루에 두 끼 제공이 됩니다. 영사가 준 라면 역시 끊여 먹을 수 있는 불이 없어 숯이나 나무를 사서 물을 끓여 먹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생라면을 먹는 수 밖에 없습니다.

처음 교도소 들어 와서 피부병에 걸려 온 몸이 너무 가려워 긁으면 피가 계속 나고 스트레스에 너무 피곤해 잠을 자면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몸에 올라와 상처를 뜯어 먹으며 약 30cm정도 크기의 쥐가 내 몸을 타고 넘어 다닐 정도로 열약한 환경에서 411개월의 긴 세월동안에 질병과 고통과 굶주림으로 죄수들이 16명이나 죽어 나가는 걸 그것을 보며 저는 어떻하든 지 살아서 누명을 벗고 떳떳하게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가고자 오로지 독기 와 의지 하나로 버티었습니다.

얼마 전 보석 후에 우연찮게 저와 비슷한 처지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한지수씨 이야기를 tv 뉴스에서 보며 저도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그분 또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마음에 저의 약5년 세월을 되새기며 눈물을 머금으며 이글을 올립니다. 이곳 감옥 에선 병이 나면 약도 주질 않고 몸이 아파서 병이 나도 죄수들이 급사를 당해도 눈 하나 꼼짝 않는 무서운 교도소입니다. 이곳에서 제공되는 그 음식들은 차마 인간이 먹는 거라고 보기엔 어렵지만 저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굶어 죽으면 나의 누명을 벗을 수 없고 다시는 내 조국 내고향에 갈수 없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입안에 집어넣으며 두 눈 꼭 감고 정말 이 악물고 피눈물 흘리면서 지금껏 오로지 누명을 벗어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버티어 왔습니다.

왜 하필이면 나일까? 너무나도 억울하고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힙니다. 그런 생각에 수많은 날들을 자지 못하고 밤새 잠 못 이루었습니다. 나의 모든 희망이었던 돈 이었고 또 정직하게 목숨까지 담보하며 벌었던 그 돈 약 8천만원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동생같은 한 젊은 사람 인생을 이토록 무참히 갈기갈기 찢어 놓을 수 있을까? 실은 자살시도도 여러 번 하였고 절망감속에 울분을 삭히지 못해 교도소 에서 싸움도 하게 되었습니다. 타 외국인들은 결코 차별 대우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사관의 영사님들이 수시로 면담을 하고 자국민에 대한 보호 요청으로 교도관들과 같은 죄수들도 타 국가 미결수에겐 섣불리 무시를 못하였지만 유독 우리 한국인만은 대사관의 무관심속에 여기서 수많은 멸시를 당하며 수감 생활을 했으며 나중엔 자살을 시도 하니 다른 죄수들 때문에 실패를 하고 싸우면 독방으로 가게 되고 나만 손해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20099sbs 뉴스추적 방송 후 더욱 더 힘들었습니다. 혹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재판을 기다리는 시간은 전보다 10배 정도 더 늦게 가는 걸 느꼈기에,,. 기대가 컸기에 절망감은 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1, 얼마 전 까지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무의미한 시간 속에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을 때 처음 보는 분이 면회를 왔습니다. 인사를 하고 자기는 그냥 요즘 조중사님한테 요즘은 아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잘 계신지 얼굴 한번 보러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한국 음식을 가지고 오셨는데 그때 먹은 모든 음식이 정말 맛이 있었지만 몇 개월 만에 먹는 음식 특히 김치는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 자원봉사자들의 면회도 끊어져 저의 온몸은 먹지 못해서 생기는 피부병이 온 몸에 하얗게 피어 있었습니다(훗날 알았지만 영양실조였습니다)배가고파 허겁지겁 먹고 나니 이 사람 얼굴이 보이더군요. 구정서 라는 사람인데 저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더군요. 이런 저런 말을 하고 요즘은 아무도 저한테 면회 안 옵니다. 그래서 지금은 지내기가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있는 사실대로 말을 했더니 가면서 한국 돈 5만원 가량을 주면서 지금은 자기도 가진 돈이 이것밖에 없다며 지갑을 내 보이며 지갑 안 에 있는 돈을 모두 다 꺼내 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미안해하면서 주신 돈 을 너무나 감사히 받겠는데 가실 차비도 없으시잖아요. 하니 자기는 지프니 타고 가면 된다며 극구 사양 하였습니다. 2천 페소 정도 되는 돈이었는데 저한텐 너무나 큰 돈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돈을 나에게 주시는 것을 다른 필리핀 죄수가 보았으니 다른 곳엔 전혀 쓸 수가 없었고 그간 생필품 구입을 돈이 없어서 외상으로 하였으니 한 동의 방장에게 밀린 외상값을 다 갚아야 하는데 쓰여졌습니다. 그만큼 우리 한국민들은 여기서도 타국인 미결수들에 비해 대사관의 무관심속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 한테는 너무나 감사하고 큰 돈 이었습니다. 조만간에 또 오겠다며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 후 긴가민가 하는 생각 속에 마음을 설레며 기다렸는데 정말로 5일 후에 구정서 씨는 정확히 면회를 왔습니다. 또 먹을 거도 잔뜩 사서 한국식당에서 후라이드 치킨을 사오셨길래 허겁지겁 먹고 나니 가만히 쳐다보시다가 그때서야 말을 건네더군요. 자기는 조중사님을 출소 하는데 돕고 싶어서 왔습니다. 예전부터 나에 대한 소식은 들었지만 도울 기회가 닫지 않아 돕지 못했는데 지금은 도울만한 힘이 생겨 조중사님 출옥하는데 돕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조중사님 에게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단지 같은 한국인이고 나랑 같이 젊은 사람이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또한 다시는 조광현씨 같은 사람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마음으로 도우러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너무나도 참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전 그때의 심정은 단순히 마음으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내 사건을 누구보다도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벌써 50번도 넘게 재판을 받았고 억울하다 항변도 하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였지만 재판은 항상 똑같았습니다. 매일 재판장의 개인적인 다른 이유로 다음 재판으로 연기 되고 또 연기 되고.

이게 벌써 약5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변호사 역시 신경도 안 쓰며 돈만 받고 심지어 재판 날짜도 모르는 상황도 있었고, 재판이 취소가 되었던 경우에도, 제가 직접 전화하면, 전화를 받지 않았기에, 자원봉사자님들을 통해 알려주게 된 상황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은 아무도 도와주지 못 할 뿐더러 나는 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이미 제 생각은 나갈 수 없다고 굳어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필리핀은 자국민 보호법이 너무나 강한 나라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필리핀은 잘살지는 못해도 자국민을 굉장히 보호하는 나라입니다. 제 사건 같은 경우는 외국인이 자국에서 자국민을 살해한 사건으로 연류되어 제가 잡혔습니다. 이렇게 자국민 보호법이 강한 나라에서 외국인이 자국민을 죽였다고 하니 특히 저같이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은 꼼짝없이 30년 이상을 여기서 보내야 합니다. 그럼 저 라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존재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필리핀 법체계상 저의 죄명이라면 최하 징역 20~ 40년이라는 징역형이 판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아는 저는 그냥 잘 부탁 합니다.라는 말만 한 체 희망을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가끔 면회나 오셔서 먹을 거나 사오시면 감사하겠다고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내 스스로 그런 말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이런 저런 말을 하며 구정서 씨가 나가면서 돈을 한 묶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주시는지 조중사님 여기 있는 것도 힘든데 아들이 아프다면서요? 일단은 여기 있으면서 밥이라도 잘 챙겨 드시고 나머진 외상값 갚고 혹시 더 힘든 한국 미결수가 있으면 같이 식사라도 하세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나는 저 사람과 같은 피가 섞인 것도 아니고 내가 도와 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돈이 많아서 갚아줄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저 분은 아무런 이익이 없는데.

하물며 나를 위해 한때 조중사 구하기보석모금운동을 한 자원 봉사자들처럼 모금을 해서 모인 돈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건 나를 위해서 아무런 조건 없이 준 돈입니다. 제가 여기 5년 동안 살며 자원봉사자님들이 힘들게 모금운동해서 제가 생활비로 받은 돈이 그간 모두 합쳐서 총 3만페소(75만원) 조금 넘는 돈 뿐인데, 저 분은 그냥 8만페소(230만원)나 되는 큰 돈을 주고 가면서 가족도 아닌 분이 내 몸 걱정 해주며 내 가족들 까지 신경 써 주시면서 하는 말 용기 잃지 말고 조중사 님은 꼭 나올 수 있습니다. 희망 잃지 마세요.”

전 너무나 어리둥절하고 믿기진 않치만 정말 감사히 받았습니다. 그 감사함에 눈물이 저절로 흘렸습니다. 내겐 정말로 돈이 간절히 필요 했었기에. 자원봉사자님들도 3월달에 제 일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하루는 봉사자 한분이 한국에 계신 불쌍한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께도 보석 신청 서류를 받기 위해서는 로비자금이 30만페소라며 그 돈을 요구 한다고 하며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돈을 구하지 못해서 못 나오는 줄 아는 어머니는 한없이 우셨습니다. 전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 정도로 아팠습니다. 구 정서(terry )씨가 준 돈으로 우선 외상값을 갚고 저처럼 누명을 쓰고 생활하는 다른 불쌍한 한국 미결수에게 음식도 나누어 주고 애기 엄마 면회 오게 해서 당시 아들이 아팠는데 돈이 없어 병원도 못가는 상황이었는데 병원비도 주게 되었고 난생 처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한것 같아 마음이 조금이나마 홀가분 해졌고 또한 필리핀 죄수에게도 조그마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당시 심신이 너무나 지쳐 있었습니다. 재판 과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어떻게 변할 기미도 안보이고 집안 사정을 도와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아무런 희망도 없고 더 이상 버티어 나갈 수 있는 목표마저 생각 하지 못하는 정신적인 공황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저에게 희망도 주고 경제적으로 처해 있는 상황도 해결해 주고 정말 저에게는 천사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이후에 저에게 작은 변화가 일어나 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 졌습니다. 이후 일주일에 한번이나 두 번은 꼭 면회를 와주었습니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 하면서..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이후 구정서씨를 만나고 거의 두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날을 잊지 못 할 것입니다.

928일 갑자기 저녁쯤 구정서 씨가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는 전화를 거의 자유롭게 사용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화 거는데 도 돈을 내며 전화 받는 것도 돈을 냅니다.) 그때 제 느낌이 평소와는 달리 마음이 너무나 이상했는데 구정서씨가 본인이 5년간 기다리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믿기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설마 그런 일이 일어 날수 있을까 생각 했습니다.만약에 정말로 내가 나갈 수 있다면 저분은 정말 하나님이 저에게 보내주신 나에겐 천사와 같은 분이시다.

다음날 929일 구정서 씨가 면회를 왔습니다. 웃으면서 자 봐요.” 서류 종이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보석을 허락 하는 서류였습니다. 저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이게 꿈이면 어떡하나 하고꿈이라면 깨지 말아주길 바라면서 눈물이 그친 후에 정신을 차리고 서류를 보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변호사도 아닌 분이 이런 서류를 받아 주시다니. 자세히 서류를 읽다 보니 보석금이 무려 60만페소(1600만원 정도). 물론 보석허가 서류를 받아 너무나 기뻤지만 이 보석 금액은 너무나도 크고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기에 앞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저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볼 수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기에..물론 한국에 가족도 있지만 그 동안 보내주신 돈도 무리해서 보내셨고 또 집에 형편도 도와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정서씨는 이미 모든걸 알고 있었습니다. 구정서씨가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을 건넸습니다. “어떡하든 해결 해 봅시다. 되는 대로 돈 만들어 봐야죠.”어떻게 가족, 피를 나눈 형제도 하기 힘든 일을 전혀 남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지, 세상에 천사가 존재한다면, 이 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듣기론 구정서씨 역시 넉넉한 사람이 아닙니다. 중간 중간에 저의 재판 일을 보면서 쓴 돈도 당연히 많은 돈들이 쓰였을 거구. 저는 정말 고맙고 죄송할 뿐 이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tv를 보는데 필리핀 한 전직 경찰관이 홍콩 관광버스를 납치해 인질극을 벌인 일이 있었는데 이 상황을 tv로 생중계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다수의 사망자를 내었고 외교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일으킨 사건이며 전 세계에 토픽으로 알려진 사건으로 한때 한국관광객으로 보도가 나가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인질극사건입니다. 며칠이 지나 한 교도관이 말하더군요. 너 그 경찰 기억나냐고? 아니 모르겠는데? 저 경찰 얼굴이 안 나와서 니가 보진 못했지만 저 인질극한 전직 경찰이 비리경찰로 경찰직에서 해고당했는데 경찰직을 복직 시켜 달라며 버스를 납치해 인질극한 저 놈이 바로 2005년 당시 너를 수사하고 누명을 씌워서 잡아넣었던 바로 그 로날도 멘도사라는 비리 경찰 이라고...

전 마음이 너무도 찹찹했습니다. 나를 이렇게 만들고 또 내가 누명을 벗으려고 검사측에 수없이 증인 출석을 요구해도 한번도 나오지 않다가 경찰에게 사살 되어 이런 일로 죽어버리다니. 그때의 제 심정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정도로 복잡했습니다. 그후 구정서씨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보석금 마련하는데 1달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5년 동안 피눈물 흘리며 보석용지 그거 하나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그 용지를 받고도 보석금이 없어 나오지 못하는 제 심정 누가 알겠습니까? 그때 한 달의 시간은 정말 천만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돈 60만 페소(1600만원)의 돈은 가난한 우리 가족은 구할 수 없었고 안에 갇혀있는 제가 어떻게 이런 큰 돈을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 돈은 저한테는 너무도 천문학적인 돈 이었습니다. 구정서씨 또한 넉넉하지 못한 사정으로 그 돈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하물며 저한테 미안해하시는 그 마음에 저는 눈물을 머금고 너무나도 긴 천만년 같은 한 달을 보냈었습니다.

108일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국가와 가족 그 어떤 사람들이 다 저를 외면했을때 자신도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 하나를 보고 모든 걸 희생해주신 구정서씨는 정말 저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교도소 출감하는 정문에서 나도 모르게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만세 3창 외쳤습니다. 이후 약5년 만에 만나는 바깥세상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5년 동안 피눈물 흘리며 죽을 고비 넘기고 그렇게 기다렸던 그리고 생전에 다시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을까? 꿈에도 그리던 바깥세상을 다시 대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 구정서씨 도움으로 대한민국 국가가 외면하고 대사관이 외면했고 나중엔 모든 사람이 돌아섰지만 전 이제 무죄를 받아서 곧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갑니다.

다시는 저와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먼 타국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관심과 도움을 바라며 또한 조국을 그리워하며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단 한명이라도 억울하게 당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다시는 발생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억울한 희생은 저 조광현 하나로 족합니다. 정말 다시는 저 같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대한민국 정부에서 최소한의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이행해 주시길 기원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억울한 희생은 저 하나로 족합니다. 모든 국민이 국가의 보살핌 아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노력을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저 같은 일을 당할수 있습니다. 내가 될수 있고 내 가족이 될 수 있고 친구가 당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어떠한 누구도 이런 일이 벌어 지지 않게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져 국민들이 힘을 합쳐 다시는 저 같은 일이 벌어 지지 않게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조 광 현 올림 (+63-917-881-5253 rokmc818@hanmail.net)


... 위의 글은 조광현 씨가 2010년 12월 18일 뉴스제보에 제보한 내용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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